사회에서는 때로 매정한 결정을 내릴 것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자기가 제 3자의 위치에 있거나 아랫사람의 입장이거나,
참모로 있을 때에는 윗사람의 ‘모진 냉정함’이 늘 못마땅하다.
그리고 자기가 보스가 되면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친다.
하지만 로베스삐에로가 말했듯이 가장 반항적인 이들이 파워를 잡으면
아이러니컬 하게도 제일 지독한 독재자가 된다.
막상 그 자리에 한 번 서보라. 당장 조직의 생존을 위해 인사(人事)와 재정,
미래의 방향을 시시각각 결정해야 된다. 한가한 탁상공론이나 장난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내 결정에 달려 있으므로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을 져야 한다.
억누르는 상사보다 어쩌면 더 힘든 것이 제멋대로인 부하라는 사실에 섬뜩 놀란다.
비난은 쉽지만 대안 제시와 실행은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매일 절감하는 것이 윗사람의 자리다.
부패를 청산하고 싱가포르를 부국(富國)으로 만든 리콴류 전 총리에겐 아픈 기억이 있다.
한 번은 탁월한 건축 설계사로서 싱가포르 정부의 고위 관료가 된 그의 친구 하나가
백만달러의 뇌물 스캔들에 연루되어 징계 대상이 되었다.
친구는 리콴류에게 몰래 찾아와서 선처를 호소했지만
리콴류는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며 이를 악물고 그를 돌려보냈다.
국민 여론의 매서운 질타 앞에 그 친구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해 버렸다.
리콴류에겐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됐다.
“그 친구는 고작 백만달러의 뇌물 스캔들로 자살까지 해야 했는데,
아마 그 친구가 우리나라에 벌어준 돈은 그 수백배는 되었을 겁니다.
정말 유능하고 좋은 친구를 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매서운 각오가 없인 결코 부정부패 척결이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죠.
신뢰를 잃으면 개혁은 끝입니다.”
우리는 지도자의 자리가 요구하는 이 거룩한 냉혹함을 어느 정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어른이 되고, 리더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한번 봐주고 싶고, 만나주고 싶고,
승낙해주고 싶지만 결연히 “노!”라고 해야만 하는 때가 수없이 많다.
제대로 된 야당이 되려면 한 번쯤은 여당을 해본 사람이어야만 한다.
부모 속을 썩인 사람은 반드시 자기 자식한테 똑같이 당한다.
참모 시절 보스의 심정을 이해해 주지 않았던 사람은 자기가 보스가 되면
자기보다 더 반항적인 부하들에게 고통당한다.
리더의 길은 그래서 뼈가 시리도록 외로운 것이다.
때로는 당신과 가장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서마저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을 들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고도(孤島)에 갇혀 있는 것 같은 그 고독.
문제는 많은데 그것을 나눌 사람이 주위에 없을 때의 답답함.
비판하는 사람은 많은데 함께 책임질 사람은 없을 때의 절망감.
이때가 바로 리더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때요, 절대자 앞에 겸손히 엎드릴 때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가 가장 아름답고 리더다운 순간이기도 하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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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일 화요일
잘 거절하는 것도 실력이다.
2007년 8월 27일 월요일
그저 줄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것저것 재지 않습니다.
그저 줄뿐입니다. 아플 때까지 주십시오.
기도하면 믿게 될 것입니다.
믿으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면 섬기게 될 것입니다.
나는 모든 인간에게서 신을 봅니다.
내가 나환자의 상처를 씻을 때 예수를 돌보는 느낌을 갖습니다.
어찌 아름다운 경험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날 꿈에서 내가 천국의 문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는 내게
“지상으로 돌아가라. 여기에는 빈민굴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작은 일들이란 정말 자잘한 것들이지요.
하지만 작은 일에 충실하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 받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실패했다고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했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고통을 나누고
서로 용서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많이 가질수록 줄 수 있는 것은 적습니다.
가난은 놀라운 선물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것 이상을 돌려줍니다.
그들은 강한 사람이며 음식이 없이 하루 하루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저주하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1997년 9월 5일 테레사 수녀가 사망했을 때
각 언론에 보도된 테레사 수녀의 어록 모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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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자유롭게 복사해 가셔도 되지만, 위의 출처로 Hasigle.com을 분명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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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9일 일요일
남을 충고하는 법

남에게 충고할 경우에는 먼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하며,
단점보다는 장점을 먼저 말해 주고 그 다음에 단점을 고치도록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만이 반드시 최선은 아니며,
상대방의 결점을 꼬집어내기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충고를 할 경우에는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부드러운 말씨를 써야 하고,
지겹게 설교를 늘어놓아서도 안 됩니다.
물론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이 여섯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충고를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정당한 충고가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자신의 방법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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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5일 수요일
사람을 다루는 능숙한 솜씨
-사람다루는 솜씨가 능숙하다는 주위의 평에 대한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답
- 경영의 신이라 일컬어지는 마쓰시타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원하시면 본인의 이름과 메일 주소를 밝히지 않고 보낼 수도 있습니다.
2007년 7월 21일 토요일
거창고 직업선택의 십계명
월급 적고 장래성 없는 직장 가라
「월급이 적은 직장을 선택하라.」「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라.」경남 거창고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학교 강당 뒤편에 걸려 있는
「직업선택의 십계(十戒)」라는 유리 액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거창고 직업선택 10계명>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은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6.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을 바랄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극심한 취업난 속에 조금이라도 나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요즘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현실성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들이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 학교는 거창고 외에는 전국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거창고 졸업생을 비롯한 학생들은 이 10계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있다.
직업 선택 10계명은 4대 교장을 지낸 전성은(전 교육혁신위원장) 현 교장(6대)과 도재은(5대 교장)씨가 1980년대 초 만들었다. 이 학교 유상철 연구부장은 "중요한 것은 글귀가 아니라 그 속에 든 정신"이라며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학생들이 몸속에 익혀 나가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10계명에 깃든 정신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첫번째이고, 또하나는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가르치기 위해 10계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출처 : 중앙일보 06.01.23>
사람을 움직이는 3원칙
사람을 움직이는 3원칙 (3/3)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무슨 일을 하도록 만들려면 우선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다.
“어떻게 해야만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고 싶다는 기분을 불러일으킬수 있을까?”
나는 철이 바뀔 때마다 강습회를 열기 위해 뉴욕 어느 호텔의 대강당을 밤에만 20일간씩 빌리기로 1년마다 예약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강습회를 시작할 무렵의 일이다. 호텔 측이 대강당의 사용료를 종전의 3배로 인상하겠다는 통지를 보내 온 것이다. 너무나 뜻밖의 인상이었고 부당한 사용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내 마음 같아서는 모두 취소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이미 수강권이 인쇄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두 팔렸기 때문에 장소를 변경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호텔 측으로는 자기네 입장만을 생각하고 있을 테니 내가 아무리 항의를 한다 해도 그들의 태도에는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틀이 지난 뒤 그 호텔의 지배인을 찾아갔다.
“그 통지를 받고 나서 놀라기는 했지만, 당신을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나도 아마 당신 입장이 된다면 똑 같은 통지서를 쓸 수밖에는 없었겠지요. 호텔의 지배인으로서는 될 수 있는 대로 호텔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당연한 임무이고, 그것을 못 하는 지배인이라면 당연히 자리를 물러나야 할 줄로 압니다. 그런데 이번 사용료 인상 문제를 놓고, 그것이 호텔 측에 이익을 줄지 불이익을 가져다 줄지 표로 작성해서 검토해 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말한 나는 백지 한 장을 꺼내 그 중앙에 선을 긋고 “이익”과 “손해”라고 쓴 두개의 공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익란에 “대강당이 빈다” 라고 기입하고 나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당신이 요구하는 사용료를 지불하기 어려운 처지이니 강습회는 다른 장소에서 개최하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비게 된 대강당을 댄스 파티나 다른 용도의 모임에 빌려줄 수도 있을 테니 이익이 생깁니다. 강습회에 빌려 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용료를 받을 수 있으니 이것은 확실히 큰 이익일 것입니다. 그러니 20일간이나 대강당을 강습회로 인하여 호텔에서 사용할 수 없다면 이것은 호텔 측으로선 큰 손실이 될 겁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호텔에 손해가 될 수 있는 점을 따져 볼까요.
첫째, 나는 대강당을 빌릴 형편이 안 되므로 나한테서 들어올 20일간의 고정 수익은 한 푼도 없을 겁니다. 또 다른 하나, 호텔 측에 불리한 점이 있습니다. 이 강습회에 오는 청중들은 중산층으로서 주로 지식인과 문화인들이 많이 참가합니다. 이것은 호텔을 위해 훌륭한 선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5천달러를 들여 신문 광고를 낸다 하더라도 이 강습회에 참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이 호텔에 와서 보는 것보다는 광고 효과가 낫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강습회가 호텔 측으로 본다면 굉장한 이익이 되는 게 아닐까요?”
나는 두 가지의 손해를 해당란에 기입하고 나서 그 종이를 지배인에게 건네 주었다.
“여기에 기입한 이익과 손해를 살펴보시고 최종적인 연락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튿날, 나는 사용료를 50%만 인상하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이 대강당 사용료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내 자신의 요구를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해 주기 바란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방의 요구에 관해서만 이야기했으며, 어떻게 해야만 상대방의 바람이 충족될 수 있는가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검토한 것뿐이다.
가령 내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지배인에게로 달려가 이렇게 소리 질렀다고 치자.
“갑자기 시용료를 3배나 올리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요? 지금 수강권도 다 팔린 상태라는 걸 당신도 알고 있으면서 그럴 수가 있소? 3배나 인상한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요? 나는 그 돈을 못 내겠소!”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아마 서로 흥분하여 욕설이 튀어나오고, 어쩌면 주먹질까지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설렁 내가 상대방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논리적으로 그를 설복시켰다 하더라도 자존심 때문에 그는 자신의 결정을 쉽사리 번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