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21일 토요일

더위를 피하려면 스스로 더위가 되십시오

서울 성북동 길상사는 지난 8일 전 회주 법정스님을 법사로 300여명의
대중이 모인 가운데 하안거 해제법회를 봉행했다. 법정스님은 법문에서
“더위를 피하려면 스스로 더위가 돼라”며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자세를 강조했다. 스님의 해제법문을 정리했다. (불교신문편집자)

지난한 더위에 안녕들 하셨습니까.
더위가 귀찮고 짜증스럽긴 하지만 그 더위 덕분에 곡식이 자라 우리가
소중한 양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름이 있어 가을이 있고 겨울이 있습니다.
지금 이 찌는 듯한 더위도 대자연의 순환 속에 자연스레 사라질 것입니다.

하안거 해제를 맞아 지난 90일 동안의 안거 기간을 되돌아보십시오.
하루하루 자신이 행한 정진이 얼마나 향상의 길로 나아갔는지 스스로를 성숙
하게 했는지 살펴보십시오. 순간순간의 정진에서 기도삼매의 기쁨을 누리셨다면 해제를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형식적인 해제가 될 뿐일 것입니다.

스님이 입적하면 ‘세수 몇 세, 법랍 몇 세’라고들 이야기합니다.
가끔 올해 내 법랍이 몇이지 반문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곤란합니다. 사실 법랍이란 단순히 스님으로
살아온 햇수가 아니라 정진의 치열함과 깊이를 따져 셈해야 합니다.
안거를 착실하게 치러냈다면 법랍이 쌓이겠지만 3개월 동안 허송세월만
보냈다면 허투루 나이를 먹었을 따름입니다.

무더위 전에는 장마가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유난스런 장마를 겪으며 인간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러한 장맛비처럼 사람과 사람이 끈질기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얼마나 지겹고 넌더리가 날까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집착은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고 원한을 사게 됩니다.

‘어지간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선조들이 가르친 처세법이고
극단적인 투쟁을 피하라는 삶의 지혜입니다.
생각을 돌이켜 집착하지 마십시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에 속지 마십시오.
전 늘 산에서 나무를 베고 살기 때문에 잘 압니다.
아무리 찍어도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중심이 확실한 나무가 너무나 많습니다. 제 뜻대로 하겠다는 고집을 버리십시오.

더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더울 때 덥지 않고 춥다면 이것은 기상이변이고 생태계에 커다란 이상을 가져옵니다.
더울 땐 덥고 추울 땐 추워야 합니다. <벽암록>에 보면 이런 문답이 나옵니다.

어떤 스님이 동산양개 선사에게 묻습니다.
‘몹시 춥거나 더울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사는 ‘추위나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이에 ‘어느 곳이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냐’고 재차 묻습니다.
동산양개 선사는 ‘추울 때는 네 자신이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네 자신이
더위가 되라’고 타이릅니다.

자신의 맡은 바 일에 열중하면 더위를 모릅니다.
일없는 사람이 더위를 더 느낍니다.
용광로 옆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더위가 범접할 수 없습니다.
이 무더운 날씨에 제철소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근로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겐 더위가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 자신이 더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해 복구현장에 가보면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뙤약볕 아래를 하염없이
떠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흙더미에 묻힌 가재도구를 하나라도 더 건지려
불볕더위 속에서 땅을 헤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붙이를 구해야겠다는,
살아야겠다는 일념 때문에 더위를 느끼지 못합니다.

머지않아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이런 더위도 저절로 자취를 감출 것입니다.
지금 한시라도 곁에 없으면 못 견뎌하는 선풍기와 에어컨이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됩니다.
모든 현상은 한때입니다. 이 현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이라면 누가 감당할 엄두를 내겠습니까.
언젠간 사라질 것이니까 극복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깁니다.
더구나 우리가 살아있으니 이런 더위도 느낄 수 있는 법입니다.

살아있음은 그때그때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출처 : 불교신문, 2006-08-10>

댓글 없음:

댓글 쓰기

HASIGLE.COM의 글을 읽고 느낀점을 마음 편하게 써주세요.

하루를 시작하는 글, 추천 블로그 모음